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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ii/ie vie ravie eiidaa

Are you my precious Gift?

엔디미오 2018. 12. 31. 04:48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꿈에 빠져들었나보다.
꿈은 언젠간 깰 수 밖에 없는 허황된 무언가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방심해버렸다.


까마귀는 살점을 도려내어 먹고, 내장을 파먹고, 이윽고 심장마저 파먹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까마귀의 액막이라는 역할이 부여된 나는, 언제나 주목받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까마귀의 무대 뒤에서 웅크린 채 있는 것이 내게 허락된 행위였으며, 곧이곧대로 행했더니 그림자 속에 묻혀버려선 그 누구도 날 찾질 않았다. 그놈의 본가 도련님이 무엇이라고 한 사람의 전부를 좌지우지 하는가. 한 때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동경심이 존재했다. 친누나도 그를 동경하는 느낌이였기에, 저도 멋모르고 동경했다. 그리고 배신을 당하고, 저 멀리 날아가버린 까마귀를 보고나서야 깨달았다. 까마귀처럼은 절대 안될거야. 사랑이라는게 무엇이라고, 꿈이란게 무엇이라고 우리를 배신할 수 있지?
어릴 적 만났던, 품위 있었던 선망의 대상은 어느새 까마귀가 되어 날아가버렸다. 그리고 그가 날갯짓 한 땅에는 친누나와 자신이 새카만 깃털마냥 남겨졌다. 친누나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렸고, 매사에 신경질적이여도 가끔 웃거나 먼저 말을 걸었던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 모습이 마치 인형과도 같아, 가끔 부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충동적으로 들었다. 오히려 부숴버리면 누나도 나도 행복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작은 행복보다는 목숨을 연명하며 가문의 덕을 보는 쪽이 더 메리트가 있었기에, 나는 그 생각을 한 당일에 어르신들께 말씀을 드리고 상경했다.
생각해보면 까마귀가 있었기에 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직 액막이로 쓰기 위해 낳은 아이 치곤, 꽤나 좋은 대우를 받았으니까. 몸 안쪽에 문신이 새겨져도, 조금만 참으면 고통은 금방이였으니까. 단지 본가와 분가의 사용인들이 나를 없는 사람 취급을 하는 것만 빼면, 사는데엔 지장이 없었으니까.

상경을 하자마자 좋았던건 나를 한 사람으로 봐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본가와 가까이에 있는 학교를 다닐 땐, 이미 소문이 퍼져있어서 불길한 기운을 옮겨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운 시선으로 날 보거나 혐오스럽다는듯 취급한 교사들밖에 없었기에. 그래서 그것 하나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때의 나는 아직 연기하는 법을 몰랐고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도 그만큼 어색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길거리에서 누군가가 내 앞에 나타나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연예인 해보실 생각 없으세요?"

이제 와서 말하는거지만, 나는 통신 판매가 아니라 사이비 종교의 무언가인가 싶어서 대충 대답하곤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어딘가 필사적으로 보이는 네 모습만큼은 무척 인상적이였기에, 사람이 필사적이면 생판 초면인 사람에게도 이런 말을 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내가 느낀 너의 첫인상이였다. 이후에 한 학년을 올라, 너와 같은 반이 되었을때도 별 느낌은 없었다. 어쩌다 우연히 아야나기를 간다는 말이 겹쳐, 흥미를 가지기 전까지는.
까마귀가 변질되어버린 그 곳에 너도, 나도 가는구나. 너는 얼마나 바뀔까. 마냥 시시콜콜한 생각을 하며, 네가 평소보다 조금이나마 열의 넘치게 말하는 모습이 마치 아야나기에 가겠다고 선언했던 까마귀의 모습과 겹쳐 보였기에. 나는 몸 깊은 곳에 새긴 문신의 아릿한 고통과 함께 네 모습을 그저 구경했다.
까마귀의 행위를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직접 알아보려고 아야나기에 들어왔다. 요컨대 꿈-까마귀-을 부정하기 위해 이 곳에 들어왔다. 하지만 꿈은 점점 변해간다. 언제부터인가 내게 있어서 꿈은, 그림자만 남은 까마귀가 아닌 네가 되었다. 처음에는 나 자신도 어이가 없어서 부정했다. 하지만 장난으로나마 '좋아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어, 너에게 전하고 부정당하려 했던 것과는 달리 너는 내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여태껏 너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매번 곤란하게 만들 때마다, 너는 신선한 반응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 모습이 마냥 귀엽게 보였기에, 나는 장난이라는 가면 속에 마음을 포기하지 못했다.

후회를 안 한다면 거짓말이다. 네가 길거리에서 처음 말을 걸고 다가왔을 때부터 너는 내 속에 문신처럼 각인되었고, 현재에 이르러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을 정도로 깊게 남아버렸다. 까마귀의 꿈을 부정하고 싶은데, 네가 부정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괴롭다. 너는 최고의 선물(Gift)이자, 최고의 독(Gift)이다. 어째서 네가 내 꿈이 된거지? 만약 이 꿈에서 깨면, 나는 어떻게 되는거지? 까마귀를 죽이는 것이 꿈이였던 시절과는 달리, 숨통이 턱하니 막힌 감각 속에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이건 언제나처럼의 연기 속에서 단 한순간이라도 너에게 내가 깊이 박혀, 오래토록 기억되길 바랬기에 하는 고백이다. 그래야 나는 미련없이 떠날 수 있을 테니까. 사상 최악의 고백을 당연히 받아줄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결정권은 너에게 넘길게. 겉면인 나만 보고 섣불리 받아들이는건 리스크가 너무 크잖아? 이런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겠으면 아예 모르는 사이로 리셋해줘. 나를 향한 일말의 혐오도, 감정도 없애줘. 친구 사이였던 기억을 없애줘. 그래야 나도 마지막 남은 미련도 흘려보낼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만약, 희박한 확률로 그게 아니라면. 내가 여태까지 널 괴롭히며 했던 말을, 방금 네가 한 말을 나에게 한번만 더 해서 확고하게 만들어줘.

미안, 부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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