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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TA/Достигай идеала

乙月 鈴音_벚꽃 비

엔디미오 2017. 7. 21. 12:27



언제부터였을까. 단순히 크게만 보였던 자적(紫赤)이, 어느샌가 내 마음속에 들어와버린건.


'코우즈키 언니!'

마냥 어렸던 일곱살의 자신이 벚나무로 무성한 산책로의 벤치에 앉아있는 소녀에게 뛰어갔다. 벤치에 앉아있는 소녀는 마냥 곱고 아름다웠다. 방계가 꽤 많은 편인 코우즈키의 유일한 핏줄이자 차기 가주, 코우즈키 네무이. 그녀는 자신이 꿈꾸는 미래였다. 물론 나이차는 두살정도밖에 나지 않는 롤모델이지만, 두살 차이는 커녕 네다섯살 차이가 난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저 어른스러움은 본받고픈 모습이였다.

'오랜만이네요, 오토즈키.'

여름도 아닌데 치링, 하고 풍령이 울리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청명한 목소리. 소녀는 읽던 책을 벤치에 올려놓곤 제 쪽으로 양 팔을 벌렸다. 그러면 자신은 항상 달려가, 그 품에 폭하고 파고들곤 했다. 사시사철 언제나 기모노-물론 여름엔 유카타지만-를 입고있던 그녀는 낡은 책의 냄새가 옷에 베여있었기에, 유독 그 품 안에서만큼은 편안했다. 부모의 잔소리도, 두번째 후계니 뭐니 하는 노인들의 잔소리도, 전부 그 품 안에선 전부 사라져버리듯 아무 생각 없이 편히 안겨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더이상 안겨있다간 어른들에게 들켜버릴지도 모르니, 아쉽지만 떨어지자.

'크흠,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품 안에 안겨있다가 떨어져선 하는 첫 말이 이런거라니. 지금 생각하면 쪽팔려서 어딘가 있을 쥐구멍으로 들어가버리고픈 말이건만, 그 당시엔 어른스러움에 동경심을 품고있던 나이. 그리고 그 모습을 비웃어도 좋건만, 자연스레 받아주는 소녀의 화답에 더욱이 자신감을 얻었다.

'네. 이렇게 생각해주는 덕분인지, 그간 평안했답니다. 오토즈키는 그간 평안했나요?"
'물론이죠!'

충성 자세로 손을 이마쪽에 올리곤 환히 웃는 자신이 귀여웠는지, 소녀는 손으로 입가를 가리곤 웃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볼때마다, 자신은 그녀를 웃기기 위해. 밝은 모습이 보고싶어서 계속 애교를 펼쳤다.

...아마도, 그게 이 모든 감정의 시초가 아니였을까 싶다.

벚꽃이 만발한 봄이 지나, 유독 지면의 열기가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 울긋불긋 붉게 물들은 단풍으로 가득한 가을이 지나, 앙상해진 가지들이 다 떨어진 낙엽들 대신 새하얀 눈 옷을 껴입는 겨울이 지나, 이듬해 봄이 다시 찾아왔다. 지나온 계절들마다 연례행사가 크게 있을때면 본가에 어김없이 찾아왔고, 소녀는 언제나 자신을 제 품에 안아줬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소녀는 이번 봄엔 어딘가 무척 다른 모습이였다.
여성들이 입는 기모노의 차림은 어디론가 벗어던진채, 소녀는. 코우즈키 네무이는, 남성의 기모노를 입고있었다. 하오리를 걸친채, 정원으로 향하는 복도를 유유히 걷던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였기에. 자신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언제나처럼 달려가, 품에 껴안길 수 없었다. 마치 다른 사람을 마주한 것 같은 괴리감.
멀찍이 서 있는 모습을 발견했는지 그는 자신과의 키 차이를 배려해 한쪽 무릎을 꿇곤 양 팔을 벌렸으나, 제 몸은 거부감을 느꼈다. 그리고 발을 뒤쪽으로 돌려, 결국 도망쳤다. 뒤에서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있을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아마 이상한 아이를 보는 표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니 그건 그것 나름 슬플 것 같았다. 혼자 도망치고 혼자 망상하고. 이제 막 여덟살인 어린아이다운 패턴이였다.

벚꽃이 하늘하늘. 여러가지 생각으로 뒤엉킨 머릿속도 뒤죽박죽. 자기가 어디로 뛰어가는지도 모른채, 무작정 달린 그 끝은ㅡ

'오토즈키. 오토즈키 스즈네.'
'어라...?'

소녀의 목소리였다. 남성의 기모노를 입은, 언제나 듣던 소녀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자신은 어떻게 했더라. 아마 도도도 달려가, 언제나처럼 폭 껴안겼던가.
남성 기모노를 입은 소녀의 모습이였지만, 정작 달려가 안긴 그 품에선 여전히 낡은 책 냄새가 풍겨왔다.

'혹시 이런 제 모습에 놀랐나요?'

물론이다. 너무 놀랐다. 하지만 그런 내색 없이, 자신은 말없이 품 속에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그는 웃었다.

'아하하하, 거짓말이죠?'

정곡을 찌르는 그 한마디에, 몸이 굳어버렸다. 어쩌지… 거짓말을 해서, 소녀를 피해서 미움받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더욱 세게 제 품속으로 들여, 머릴 쓰다듬어줬다. 한없이 자상했다. 그래서 결국 울어버렸다.
뜬금없이 제 품에서 세상 무너지듯 울어버리자, 난감할게 분명했을건만 그녀는 쓰다듬는 손을 멈추지 않고 입을 열어 노래를 불러줬다.

かわいた木枯らし そよそよと 
메마른 찬바람 살랑살랑이고

かわいた木の葉は ひらひらと
메마른 나뭇잎은 하늘하늘거리며

相見える日を 待ちながら 刻を数え歩く
서로 볼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세며 걷는다

綴る言の葉に 彩られ
지어낸 말에 물들여져 

紅く色めき 刹那に踊る
빨갛게 물든 찰나에 춤을 춘다

紅葉一枚 手の平に滑り
붉은 한 잎 손바닥에 미끄러져

語るは・・・
고하는 것은

이 노래는 매번 짧은 만남 뒤에 자신이 이별에 아쉬워할때마다 소녀가 불러줬던 곡이기에, 소맷자락으로 눈가를 비비곤 다음 소절을 이어 불렀다.

焼けた故郷に 別れを告げて 
불타버린 고향에 이별을 고하고

木の葉の手に引かれ 走り去る
나뭇잎이 손에 이끌려 달리며 사라진다

물기어린 목소리인데다가 음색도 소녀의 것 만큼 그리 깔끔하지도 않았건만, 용케 알아들은 그녀는 웃으며 곡 초반부분의 마무리를 이어받았다.

未だ見ぬ未来への 不安など 
아직 보지못한 미래를 향한 불안은
 
感じる暇など ありもせず
느낄 틈도 없이ㅡ

'잘했어요, 오토즈키.'
'...잘했어요?'
'잘했어요. 예쁜 음색이네요.'

망설임 없이 칭찬하는 그녀의 모습에 멍하니 있었다. 분명 남성 기모노를 입었는데, 화려하지도 않은 밋밋한 기모노인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어쩜 이리 아름다운가.

'...스즈네라고 불러주세요!'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어르신들이 있을땐 성으로 불러도, 저희끼리 있을땐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지금 생각하면 꽤나 당돌한 외침이였다. 그리고 그 순간, 바로 위의 벚나무에서 무수한 꽃잎들이 비 마냥 자신들쪽으로 떨어졌다. ...소녀가 그때 어떤 답을 했던가.
분명, 답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단지 그녀는 자신이 입고있던 하오리를 벗어, 자신의 머리에 꽃잎 비 우산을 씌워줬다.

그렇게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소녀였던 그는 이내 소년… 아니. 더 정확힌 소년과 청년의 사이에 아슬히 걸친 한명의 남자로 변했고, 그가 중학교까지와는 달리, 기숙제인 아야나기 고등부로 들어간다는 청천벽력같은 말에 감히 약혼 이야기를 꺼냈다. 제 위치도 모른다며, 어르신들이 꽤나 반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건 사랑이다. 짝사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문으로 만난 이 인연이라면, 가문으로 속박해서라도 곁에 있고싶다. 그의 품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다.
굳은 의지를 담은 눈으로, 무표정의 그에게 말했다.

"오라버니에게 연심을 품고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기모노를 입은 채, 책을 읽고있었다. 하지만 어릴때와는 달리 지금의 그는 상석에, 자신은 방계들이 앉는 아래에. 겨우 자리의 차이였지만 어릴적의 따스한 그 품은 기대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린걸까.
혼자 여러 잡념에 빠져있을때,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였나요?"

저절로 숙여졌던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자, 책을 읽고있던 그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있었다. 책은 어느샌가 덮어진 채로 책상 위에 올려져있었다.

"그 마음은, 언제부터 절 향해 있었던건가요?"

꾸지람을 하는것도 아니며, 다그치는것도 아니건만 그 질문 하나에 목이 턱 막혀버리는 느낌이다. 찹쌀떡 하나가 씹지도 않고 목으로 그대로 넘어간다면 바로 이 느낌일까.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그 어조에, 자신은 흠칫하며 몸을 굳혔다.
그 순간, 드르륵 하며 의자 끄는 소리와 함께 발걸음을 옮긴 그가 단숨에 제 앞에 섰다.

"기억할지, 기억하지 못할진 모르겠습니다만, 오토즈키 당신이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청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대략 열살즈음일때의 일, 그리고 당신이 여덟살즈음의 일이였죠."

기억하고있다. 그 누구보다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그 기억이다. 분명 잊어버렸을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자신보다 더욱 선명히 기억하고있었다.
몸이 굳어버리자, 입마저 굳어버렸는지 옴짝달싹 못하는 입을 간신히 열었다.

"기억, 해주셨던건가요?"
"네, 기억하고있었습니다."

기억하고 있었다는 그 한마디에 기분이 날라가버릴것같다. 자신만이 기억하는 추억이 아니란것에, 조금이나마 그가 마음을 열어줄까 기대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자신은 아쉬운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태어날때부터 재앙의 기운을 품은 것 때문에, 액막으로 여성옷만 입던 제가 처음으로 남자의 의복을 입은 날이니까요."

아쉬워하는 제 얼굴에,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그건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는 그런 입맞춤이였고, 남녀간의 사랑이라곤 전혀 담기지 않은 깔끔한 입맞춤이였기에 입술을 깨물곤 그의 하오리를 붙잡았다.
제 하오리가 잡히자, 그는 피어나는 꽃몽오리처럼 살포시 웃었다. 뭐가 그리도 즐거운걸까. 자신을 놀리는것이 그리도 재미있는걸까.

"열심히 노력해보세요, 오토즈키. 어르신들께선 방계인 당신이 제 2후계자라는 자리에 만족하지 못해, 코우즈키의 안사람이 되고싶어 저에게 약혼을 선포한거라고 생각하고있으니까요."
"아닙니다, 그건 절대ㅡ"

다급히 외치는 제 입을, 그는 쓰고있던 안경을 벗곤 자신의 턱을 붙잡아 얼굴을 가까이 당겨 입술이 닿을락 말락한 거리에서 멈추는걸로 다물게 만들었다.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였고, 갓 열다섯이 된 자신은 얼굴이 석류마냥 새빨개져선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연심을 가져버린 이 남자는, 진심으로 마음만 먹는다면 눈으로 사람을 제압할 줄 아는 어엿한 차기 가주였다.

"이대로 입술을 맞춰버린다면, 제 첫 입맞춤은 당신의 것."

그리 속삭인 그는 하오리 자락을 부드럽게 빼내며 뒤돌아섰다. 요컨대, 제 첫 입맞춤을 자신에게 줄 생각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가문이 엮인다면, 이 연심은 당신에게 닿을 수 있으리라. 당신의 첫 입맞춤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소녀는 여전히 여덟살의 그 봄에 마음을 빼앗긴채, 홀로 남겨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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