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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TA/Я как во сне

Aster.

엔디미오 2018. 5. 23. 00:00
[Aster]
-당신을 믿고 있어요.



여타 다른 사람들처럼 나는 계약 제의는 메일로 받는 편이었다. 그리고 이번 제의도 언제나처럼 받는 메일주소로 왔고, 나는 별 감흥없이 이번 제의의 내용을 훑었다. 이번 계약 제의는 영화 주제가와 OST의 모든 트랙을 전속으로 작곡하는 것이였고, 감독이 이제 막 뜨기 시작한 사람이라는걸 감안해서 페이는 나쁘지 않은 편이였다.

'트랙 수는 어림잡아 30트랙에서 40트랙정도... 장르는 미스테리니까 상당히 높은 음역대의 현악기로 긴장감을 조성하면 되려나.'

대략적인 영화의 시놉시스에 따라서 머릿속으로 악상을 구상한다. 거울속에 나타난 '나타나선 안될 존재'의 모습. 그리고 그 존재를 본 극단원들의 감정. 그들의 감정은 어떻지? 놀라움, 혹은 그걸 넘어선 경악?
시놉시스는 어디까지나 제의 단계에 불과했기에, 나중에 상영관에 배부될 포스터형 팜플렛의 분량만 적혀있었다. 그 말인 즉슨, 내가 받은 시놉시스는 본편 전체 분량에 비하면 극일부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놉시스는 저절로 악상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런 매력적인 소재는 도대체 얼마 만인가.

'이 감독이 뜨기 시작한 이유를 알 것 같네. ...하지만.'

하지만 이 제의를 받아들이기엔 내 일정이 촉박해.

아무리 매력적인 소재일지언정, 현실적인 스케쥴 앞에선 몇 번이고 고려해봐야 한다. 결국 현실적인 스케쥴 아래, 이미 계약한 업무들과 매력적인 소재는 동등한 선에 놓인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미련이 남아서 약간의 앓는 소리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고민을 해보지만, 역시 계약해둔 업무의 마감이 코 앞. 결국 커피 한 잔을 다 마실 즈음엔 미련을 남긴채 마음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개봉하면 신이랑 같이 휴일에 보러 가볼까.'

기왕 거절할 거, 주연 리스트나 볼까 하는 생각에 마우스 스크롤을 아래로 내려봤다. 단번에 아래로 내린 스크롤 속도에 맞춰서 가장 위에 있던 시놉시스와 감독 프로필은 그대로 위로 올라가버리고, 곧이어 배우 리스트가 그 자리로 올라온다. 그리고 배우 리스트의 오른쪽에 위치한 조연들부터 대충 훑으며 주연이 있는 왼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왜.

"...네가 왜 여기 있어?"

가장 익숙한 얼굴이, 그리고 여기에 있다는 걸 가장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행여 잘못 보기라도 한게 아닐까 싶어서 벗어뒀던 안경을 써보지만, 이미 너의 얼굴이란걸 머리가 이해하기도 전에 눈이 긍정하고 새겨넣었다. 그와 동시에 믿을 수 없다는 감정과 함께 네가 한발짝 더 나아갔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웃음이 새어나온다. 

'매니저가 드라마 중간에 영화 하나 들어올지도 모른다는데.'
'영화는... 미스테리라고 들었어.'
'응. 미스테리는 한 번만 출연해봤고 그 땐 거의 단역이었으니까. 어떤 역일지는 아직 모르지만 조금 기대 중이야.'

어떤 역일지 모른다더니, 주연이구나.

잔잔하게 미소를 띄운 채, 노트북 화면에 손가락을 살포시 대본다. 거의 매일같이 보는 얼굴임에도 액정 너머로 보이는 너의 프로필 사진은 어딘가 새롭고 어색했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스케쥴이 많다는 생각을 했던게 계약을 거절할 핑계처럼 느껴질 정도로 바라보았다. 정말, 몇 분이고 바라봤다. 질릴정도로, 하지만 질리지 않는 너의 아름다운 얼굴을 눈에 새겼다. 그리고 수 분이 지난 뒤엔 계약을 하겠다는 답 메일을 보내고 있는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


_

유리잔 안의 얼음이 청량감 있는 잘그락 소리를 내며 커피 속에 떠다닌다. 스트로우 윗쪽은 몇 번 마신 흔적으로 약간의 커피방울이 맺혀 있었고, 그 앞 소파에 앉은 나는 당연한 말이지만 감독을 기다리는 중이다. 아까 스태프 한 명이 아이스 커피를 내놓으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는데, 감독은 언제쯤 올까. 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서류 뭉치를 품에 안은 감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키리미야씨의 제안을 다른 스태프들과 잠시 이야기하느라..."
"제가 괜히 뜬금없는 제안을 해서 여러분을 혼란하게 만든게 아닐까 싶군요."

내 말에 감독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아뇨, 오히려 제안해주신 덕분에 고민하던걸 해결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제가를 어디에 맡길까 고민하던 참이였던지라 키리미야씨의 제안을 받았을 땐 반가웠으니까요.

그 말과 함께 자신이 들고 온 서류 뭉치를 내 쪽 접객용 테이블에 내려놓은 감독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주제가의 보컬은 키리미야씨가 지목한 그로 캐스팅 하겠습니다."

스탭들도 찬성한다는 느낌이였고, 고민거리가 하나 줄어드는거니 저희 입장에선 마다할게 없죠. 그런데...

제 앞의 아이스티를 홀짝거리며 한모금 마신 감독은 잔을 내려놓으며 질문을 던진다.

"어째서 그입니까? 당신이라면 이 업계에 있으니, 더 유명한 보컬과의 연분이 있을텐데."
"실례합니다. 그 말은 제 안목을 의심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만."

당신의 질문에 살짝, 울컥했다. 물론 더 유명한 보컬은 상당수 알고있다. 몇몇은 부르는대로 금방 만날 수 있을 정도의 연분을 쌓아온 사람들이였고, 그 중에서 계약을 맺자고 하면 시원하게 그 자리에서 긍정적인 의사를 낼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부르지 않고 굳이 너를 지목한 이유를 듣고싶어하는 감독의 말에, 나는 얼굴을 굳혔다.
도대체 누구를 의심한다는 말인가. 내 안목은 언제나 완벽했고, 걸어온 길은 언제나 왕도(王道)였다. 그것도 주변의 힘이라곤 일절 없이, 아무도 걷지 못한, 오직 내가 개척해온 새로운 왕도. 그런데 그걸 의심한다?

"저는 음악을 위해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사람입니다."

내가 과연 사카이 신이라는 존재와 연인이 되지 않았다면.
내가 과연 사카이 신이라는 존재와 동거하지 않았다면.
내가 과연 사카이 신이라는 존재와 같은 화앵회로 선발되지 않았다면.
내가 과연 사카이 신이라는 존재와 같은 팀이 아니였다면.
내가 과연 사카이 신이라는 존재와 같은 룸메이트가 아니였다면.
내가 과연 사카이 신이라는 존재와 같은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면.
내가 과연 사카이 신이라는 존재와 같은 꿈을 꾸지 않았다면.

과연 나는 사카이 신이라는 존재를, 그를 영화 주제가의 보컬로써 캐스팅 제의를 했을까?

"저는 그런 사람의 안목을 의심하시는건 아닐거라고 생각하고 싶군요."

...더이상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이건 '정해진 답'이다. 나는 대면조차 안해본 너를 당연히 캐스팅했을 것이다. 설령 네가 나를 모르더라도, 내가 너를 몰랐더라도. 나는 너의 사진 너머로도 느껴지는 잔잔한 열정의 시선에 압도되었으리라 예상한다. 신인인 네가 이번 영화의 주연이 된 것도, 드라마의 주연이 된 것도 전부 너에게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 감독들이 있었고, 더불어 너의 열정이 있었기에 이뤄낸 오직 너만의 성과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너에게 걸맞는 길을 제시했으리라.

다름아닌 내가 한평생을 바쳐온 음악으로.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그 사람의 음역대를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어느 옥타브까지 높이고 낮출 수 있을지. 저에겐 그게 '들립니다'."
"그저 그 뿐인가요? 그런 이유로 그의 노래도 들어보지 않고 캐스팅을 하다니. 음치일지도 모른다는걸 생각해보면 너무 도박인건 아닌지..."
"...감독님은 노래방에 가면 엔카계 곡들을 위주로 부르시는군요."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꺼낸 내 말에, 감독은 살짝 움찔했다. 거의 억측에 가까운 말이였지만, 상대가 이 억측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 만으로도 내 억측은 예상이 되고 추론이 되고 사실이 된다. 그 말인 즉슨, 내가 상대를 읽는 걸로 이야기의 주도권을 잡는데 성공했다는 말이다.

"목소리가 맑으시니 비 흡연자신 것 같고,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나오는 감독님의 사진에서 입고다니는 스타일이 한눈에 보였습니다."

오늘도 그와 비슷한 스타일이시군요. 약간의 복고풍 스타일. 그렇다면 자신의 목소리와 평소 선호하는 스타일에 맞춰서 부를만한 장르는 엔카 뿐.

내 말에 감독은 잠시 눈을 끔뻑이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갤 끄덕인다. 역시 음악인이라며, 이쯤되면 목소리 감정사가 아니냐며. 그 말에 그저 가볍게 미소를 보여주는 정도면 충분했다. 어쩌다보니 화법으로 상대를 강하게 몰고 가긴 했지만, 직업으로 신뢰를 받아내는데엔 이만큼 잘 먹히는 것도 없었기에.

"의심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키리미야씨가 말하고 싶은 바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더불어 키리미야씨 덕분에 그를 주연으로 캐스팅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덕분에 제가 전작들에서 느낀 그의 열정이 이번 계기로 대중들에게도 알려질거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시원하게 웃은 감독은 나에게 계약서를 내밀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계약을 맺었고, 네가 모르게 깜짝 선물을 조금씩 준비하기 시작했다. 


_

며칠이고 밤낮을 투자해서 기존에 계약을 맺었던 다른 곡들을 완성했다. 그리고 곧바로 네가 나올 영화의 OST와 주제가 작업에 착수했다. 시놉시스보다 더 자세한 스토리가 적혀있는 종이 뭉치는 거의 대본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의 분량이였고, 나는 네가 그 대본 속의 캐릭터를 연기하는걸 상상하며 작업하는 내내 웃음이 새어나오는걸 막질 못했다. 감독에게는 입바른 소리를 했지만, 사실 어느정돈 너를 향한 사심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깨닫지 못했을, 진주알보다도 작은 사심이.

 

이번 작곡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즐거운 작업이 되었고, 휴일엔 너와 가벼운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했다. 물론 깜짝 선물이였기에 네가 나올 영화의 작업을 하고 있다는 말은 못했지만, 무척 소중한 사람-너-이자 요새 좋아하는 사람-너-을 위한 곡을 작곡하고 있다는 내 말에 소소한 질투를 하는 네 모습이 귀여웠다. 네가 굳이 질투하지 않더라도 나에게 있어서 무척 소중한 사람이자 최근에, 아니. 앞으로도 좋아할 사람은 오직 너 뿐이란걸, 그 대상인 자신만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또다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나는 네가 걸어갈 길을 믿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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