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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gold. 본문

ZETA/Я как во сне

Marigold.

엔디미오 2018. 5. 29. 01:46

 


 

너는 손가락을 더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기절에 가깝다고 해야 할 정도로 잠에 빠졌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괴로운 듯 눈물을 흘린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너는 메트로놈 처럼 규칙적인 호흡을 내쉰다. 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만 아니였어도, 너는 아무 일 없이 평화로이 잠든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살짝 내쉬곤, 너의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쳤다. 살짝 축축한 감각과 함께, 내 손가락에 맺힌 너의 눈물방울이 내 마음을 괴롭게 만든다.


[정말 모든 게 두려운데, 무서운데, 살아나가고 싶]

내 스마트 폰의 무기질적인 액정이 네가 쓴 마지막 말 만을 보여준다. 분명 이 일이 있기 전까지만해도, 우리들의 일상은 평온했다. 네가 늦게나마 집에 돌아오면 나는 다녀왔냐는 인사를 하고, 너의 머리카락을 살짝 쓰다듬어주며 재웠다. 가끔씩 반대로 네가 날 재우는 일도 있었지만, 어쨌던 우리는 어릴 적 부터 서로에게 부족했던 모종의 무언가를 조금씩 채워가며 함께 안정을 찾아갔다. 하지만 신(神)은 너와 나를 가만히 두질 않으려나보다. 
나는 잠시 생각하던걸 멈추곤 스크롤을 위로 올리며, 네가 필사적으로 쓴 말들을 다시 눈에 담았다.

[모두 무서워. 세상에 모든 게 나를 공격할 것만 같아서 두려워.]
[이 병실의 기계도, 공기도,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섬뜩한 기억도]
[사실은 모든 게 두렵고 무서워]
[회사 사람들 앞에선 괜찮은 척을 했는데]
[무서웠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어.]
[괜찮지 않아]

괜찮지 않아, 무서웠어, 공격, 두려워, 섬뜩한 기억, 모든 게, 괜찮은 척...

어린 아이와 같은 너의 모습이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네가 눈을 감기 전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보고 싶었어]

그리고 내가 여기에 오기 전까지 날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을까. 어제 내가 집에서 편안히 있는 동안, 네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어째서, 바로 알지 못했던걸까. 어째서, 너를 기다리게 만들어버린 걸까.

"...미안해."

그저 미안한 마음 뿐이야. 그러니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할게. 단 둘만의 행복한 모형정원이라고 해도 괜찮아. 남들이 비웃어도 괜찮아. 우리는 행복해질 거야. 네가 아무런 걱정 없이, 그저 꿈 만을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도록. 이 다짐을 네 손등에 입맞추는 걸로 맹세할게. 다름 아닌 내가, 너를 지켜내 보일테니까.



_
생각을 하는덴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정을 하고 나자마자 행동으로 옮기는건 금방이였다. 나는 네가 깨어나기 전, 너의 담당 의사에게 양해를 구하곤 내 작업물들을 전부 네 병실로 옮겼다. 애당초 작업물이라고 해봤자 악보철에 가득 담긴 악보들과 만년필 뿐이였고, 노트북은 아무래도 병원이다보니 전자파가 기기나 너의 몸에 안좋은 영향이라도 끼칠까봐 조심스러워져 들고오지 못했다. 어쨌던, 내가 짐들을 옮기는동안 네가 눈을 뜨는 일은 없었다. 다행히.

짐들을 옮긴 이유라곤 단 하나밖에 없다. 네가 고통스러워 할 때 곁에 있어주지 못했기에, 네가 병마(病魔)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전까진 간호하기 위해. 간호라고 해봤자 곁에 있어주는 것 밖에 못하겠지만, 그래도 네가 눈을 감았다가 뜰 때 마다 안심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남들이 들으면 어린아이 같은 발상이라고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을 쥐어짜내도 이것 만큼 내가 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기본적인 일은 없었다.

"...으윽."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네가 약간의 신음과 함께 몸을 살짝 뒤척였다. 꿈에서도 괴로운걸까. 혹시 어제의 일을 꿈으로 반복해서 겪고 있는걸까.

"괜찮아, 괜찮을거야... 무서운건 아무것도 없어. 내가 옆에 있어."

너의 꿈 깊은 곳에 내 목소리가 전해진다면. 뇌가 조금이라도 내 목소리를 너에게 전해줘, 네가 악몽을 꾸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에게 말을 걸었다. 그와 동시에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너의 손을 꼭 잡았다. 목소리와 온기가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전해진다면 더 바랄 건 없을텐데.



_
ㅡ당신이 이런 부탁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죠. ...뭐, 어쨌던간에 알겠습니다. 받은 만큼 일은 확실하게 해드리죠. 어차피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수렁 속으로 빠져들기 쉬운 상대니까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절대 이런 쪽으로 돈과 인맥을 쓸게 될거라곤 생각치도 못했는데. 다름 아닌 네가, 나를 이렇게까지 바꾼다. 그만큼 네가 나에게 있어서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겠지.

밤 새 한숨도 자지 않고 한 손으론 너의 손을 잡은채, 한 손으론 간이 책상을 펼쳐서 작업을 했다. 만년필을 움직이며 빈 오선보에 음을 조금씩 수놓았다. 이 곡의 주인이 될 네가 어서 깨어나길 빌면서. 

"으음..."
"잘 잤어?"

좋은 아침이야.

언제나처럼의 일상과 같이, 너에게 좋은 아침이라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너는 잠시 눈알만 내 쪽으로 도르륵 굴려서 보더니, 곧 눈을 깜빡깜빡거렸다. 잠시 동안의 적막, 그 직후엔-

"...레이?"

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곤 내 이름을 힘겹게 의문과 함께 담았다. 그렇게나 내가 여기에 있는게 놀라운 일일까.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보이는 눈으로 나를 계속 보고있길래, 옆에 꺼내뒀던 폰을 너에게 쥐어주며 물었다.

"놀랐어?"

[응. 많이. 분명히 집으로 돌아갔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도, 바로 옆에 있어줘서... 안심했어.]

힘없이 웃는 너의 얼굴이 어찌나 안쓰러운지. 나는 그저 마주 웃어줄 수 밖에 없어.

"퇴원을 언제 할진 모르겠지만, 그 전까진 계속 옆에 있을거야."

[...정말로?]

"정말로."

내가 확답을 주자, 네 얼굴에 화색이 돈다. 그 모습이 마치 남동생이 하나 생긴 것 같아, 나는 더 밝게 웃어보였다. 네가 웃지 못하는 만큼, 더더욱.

이후엔 같은 일의 반복이였다. 무언갈 직접 만들어 주고싶어도 며칠동안은 목에 부담을 주면 안된다는 이유로 식사는 링거로 대체했고, 나는 네가 잠들기 전까지 병실에 계속 함께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힌 네가 잠들고 난 뒤에도 너와 최대한 함께 있으려 했다. 가끔 여의치 않게 나갔다 와야 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 일은 최대한 빨리 끝내고 네가 눈을 뜨면 언제나 옆에 있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가끔씩 너의 소속사 사장이라는 사람과 매니저가 왔었다. 그들과 처음 만났던 건 입원한지 3일째 되던 날, 네가 잠들고 난 직후였고, 누구냐고 묻는 말에 그저 동거인이라고 답한 나는 그들의 벙찐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무언가 더 묻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는 듯한 얼굴들이였지만, 나는 잠든 너의 머리카락을 아무런 말 없이 조심스레 쓸어내려주는 걸로 그들을 납득시켰다. 어떻게 받아들였던간에, 내가 우리 사이가 어떻게 되는지 직접 말한 것도 아니였고 그저 작은 행동 하나를 했을 뿐이니 그들이 알아서 이해했으리라 생각했다.



_
"아- 해봐."
"…"

하루가 지나자, 담당 의사가 죽 정도는 먹어도 된다는 말을 나에게 했다. 그리고 그대로 병원 근처에 있는 지인의 음식점 주방을 빌려, 죽을 만들어 왔다. 되도록이면 편리성과 떨어져 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병원 조리실을 빌릴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아쉽게도 그건 안된다고 한다.

"어서 아- 해봐."
"…"

그렇게 만들어 온 죽인데. 혹시 입맛이 없기라도 한걸까, 너는 얼굴만 붉힌 채 도통 입을 열지 않는다.

"혹시 내가 만든 죽이 싫기라도…"
"그, 건. 아니야…!"
"목에 무리 주면 안되니까 말 하면 안된다고 했지."
"…"

너는 내 일갈에 우물쭈물 하더니, 곧 제 폰으로 여느때보다도 빠르게 토도도독 타이핑을 하곤 화면을 내 앞에 들이밀었다.
요컨대.

[부끄러워.]

생각치도 못한 이유였다.

"그래서, 못 먹겠다는거야?"
"아ㄴ…"
"말 하면 안된다고 몇번이나 말해줘야하는거야?"

말하지 말라는 말을 재차 꺼내자, 너는 금방 풀이 죽어버렸는지 고갤 숙여버린다. 언제쯤 입을 열어줄까. 말을 하려는데 숟가락을 집어넣으면 놀라서 뱉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숟가락을 든 채 고갤 숙인 너를 보며 고민했다. 그리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떠올랐다.
이 방법이면 저항 없이 먹어주지 않을까.

"신, 그렇게 고개 숙이고 있으면 어떤 표정인지 모르겠어."

분명히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겠지만, 표정을 모르겠다는 말에 너는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마자 보인건 예상대로의 풀이 죽은 표정이였고, 나는 너의 볼을 감싸려다 목과 인접한 부위라 놀랄까봐 생각을 거뒀다. 대신에 한쪽 팔로 너의 등을 감싸듯 당겨서 가볍게 입을 맞추곤 이마를 맞대었다. 이렇게라도 하면 먹어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다 먹고 나면 한번 더 츄- 해줄 테니까, 완전히 식기 전에 어서 먹자."

어린 아이를 어르듯 하는 말에 너는 이제서야 작게 고갤 끄덕이곤 입을 살짝 열었다. 한 스푼, 두 스푼 네 입에 넣어줄 때 마다 어째서인지 부모님과 내 어릴적 생각이 새록새록 난다. 그 때와 다른 점으로는 내가 부모님의 입장에서 먹이고 있다는 점 뿐이지만...

"이것 봐, 금방 먹었잖아."

[맛있었어. 엄청.]
[오랜만에 식사 하니까 기분 좋아.]

"그래, 그래."

살짝 미소를 띈 채, 네가 다 먹은 죽 그릇을 도시락 통에 넣어두려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입고 있던 니트의 뒷자락이 부드럽게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행여 어딘가 모서리에 걸리기라도 한건가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니, 네가 뾰로통해진 얼굴로 내 니트 자락을 잡고 있는걸 볼 수 있었다.

아, 설마.

[ :< ]

너는 한 손으로는 니트 자락을, 한 손으로는 시무룩해 보이는 네 모습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은 이모티콘이 적힌 폰을 들이밀고 있었다. 너는 이모티콘과 똑같은 표정으로-오늘 처음으로 사람이 이모티콘과 매우 흡사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나를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뭔갈 잊은 건 없어?'라고 하고 있었다.
그런 너를 선 채로 내려다보길 몇 초, 나는 니트 자락을 잡은 네 손을 가볍게 풀곤 도시락 통에 넣었다. 그리고 도시락 통에 그릇을 넣자마자 어쩌면 매정하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 바로 네가 있는 침대를 돌아보았다.

[ :< ...]

"점이 늘었네."

아. 생각을 말해버렸다.

내가 무심결에 생각한걸 입 밖으로 내뱉자, 네 고개는 점점 시들어가는 파 뿌리마냥 추욱 쳐진다. 이번엔 확실히 내 실수다 싶어, 침대로 다가가 미안함을 담아 너를 안아주려는 순간ㅡ



_
나도 모르게 잠시 잠들었나보다. 눈을 뜨자마자 보인건 곤히 잠든 너의 얼굴. 창문을 통해 푸른 달빛이 잠든 너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오늘은 푹 잠들었나보네."

미동 없이 규칙적으로 호흡만 내쉬는 네 표정은 엊그제와는 달리 평온하기만 하다. 이대로 심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호전된다면 조만간 퇴원하는 것도 무리 없을 것 같다. 밖의 날씨는 마침 며칠째 맑고 좋으니, 내일은 병원 내부 공원이라도 함께 산책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곤히 잠든 네 얼굴을 보며, 갖가지 생각을 하다가 문득 엊그제와 같이 손등에 입을 맞추고 싶다는 충동에 그대로 입을 맞추었다.

아름다운 사람. 인생 그 자체가 아름다운 네가, 나에게 먼저 손을 뻗어주었다. 앞으로의 인생에 더이상 없을 이 멋진 만남으로 인해, 규칙적으로 똑딱거리기만 하던 내 메트로놈은 동작을 멈췄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행복한 일만 가득할거야."

눈물(涙)은 이제 거두고 둘이서, 함께.





[Marigold]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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